Jan van Eyck’s 1433 masterpiece, Portrait of a Man (Self Portrait?), is one of the most iconic works in the National Gallery, London. This detailed analysis explores the painting’s striking realism, symbolic details, and the artist’s famous motto “Als Ich Can,” revealing why it remains a landmark of Northern Renaissance art.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Title : Portrait of a Man (Self Portrait?)
Artist : Jan van Eyck (1422 active ~ 1441)
Date Made : 1433
제목 : 남성 초상 (자화상?)
작가 : 얀 반 에이크 (1422년경 활동 시작 ~ 1441년 사망)
제작 시기 : 1433년
재료 : 목판 위에 유채
크기 : 26 * 19cm

이 남성의 무표정한 얼굴과 강렬한 시선을 보세요. 이 작품의 모델은 거의 확실히 얀 반 에이크 본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사실 그의 외모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지만, 전문가들은 이 그림은 자화상으로 판단하고 있답니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가서 작품을 감상하세요.
이 작품은 26*19cm 밖에 되지 않아서, 실제로 보면 애개? 애게게? 하는 생각이 들수도 있습니다. 대작들이 넘쳐나는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 작품은 스쳐지나가기 좋아요. 하지만 이 작품을 알아보고 한 발자국 다가가 모델과 눈을 맞춰보세요. 분명 묘한 느낌을 받게 되실거에요. 모델은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듯 날카롭게 바라봅니다.
푸른빛 눈동자는 정확하게 나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약간 다른 방향으로 그려져 있답니다. (이것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아요..) 아마도,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리던 화가가 각각의 눈을 번갈아 집중하며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그림은 제한된 책채와 밝게 빛나는 얼굴, 그리고 어두운 배경의 강한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림의 상태에서도 알 수 있듯, 실제로는 세월이 흐르며 작품의 일부 색채는 변했습니다. 배경은 원래 파란색이었으나, 현재 검은색으로 덧칠된 상태입니다. 모델이 입은 후플랑드는 원래 자주빛이 도는 갈색이었다는데, 지금은 매우 어두운 빛깔을 띄고 있습니다.
모델은 강한 빛에서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바라보는 듯 합니다. 빛은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워 왼쪽 눈 주름, 왼쪽 관자놀이의 혈관, 입 주변의 선들을 도드라지게 만듭니다. 관자놀이의 표현은 매우 놀랍지요.
실제 사진인 듯 매우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사실 작가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얼굴과 몸의 비례를 조정했습니다. 어깨를 좁고 기울어지게 묘사하고, 머리를 크게 하여 화면에서 지배적으로 보이게 한 것입니다. 그는 코를 더 크게 그리고, 얼굴의 나머지 부분보다 약간 더 옆으로 돌려 묘사했습니다. 이는 인물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얀 반 에이크가 자주 사용한 기법입니다. 그럼에도 관객으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 이게 바로 작가의 기술이겠지요.
기술 분석에 따르면 밑그림은 거의 없었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수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얀 반 에이크는 워낙 표면 질감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빠르고 간결하게 작업했다고 합니다. (그게 더 어려운 것 아닐까요?) 모델의 수염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보면 아주 작은 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한 갈색 점 위에 흰색 점을 얹었습니다. 턱 부분에서는 흰색에 약간의 파란색을 섞어 빛을 받는 효과를 냈습니다. 이러한 빠른 붓질이 멤링의 <성 요한>이나 다비드의 <아우구스티노 수도사>의 꼼꼼하게 그린 수염보다도 더 자연스럽게 보입니다.

모델의 복장은 상류 귀족은 아니지만 유복한 인물에 걸맞은 모습입니다. 얀 반 에이크의 집안은 중류 귀족층이었고, 그는 부르고뉴 공작 필리피 선량공의 궁정화가로서 상당한 급여를 받았습니다.
그는 허리에 띄를 두른 헐렁한 긴 소매 겉옷(후플랑드)을 입고 있습니다. 목이 열린 높은 칼라는 갈색 모피로 장식되어 있고, 안에는 흰 셔츠 목 부분이 살짝 보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붉은 모자(샤프로)로 15세기에 유행한 남성 머리 장식입니다. 원래는 목과 어깨를 덮는 후드 부분이 있지만, 여기서는 머리 위로 쌓아 올려져있으며, 접힌 가장자리의 주름이 화면 상단 거의 끝까지 솟아있습니다. 긴 꼬리는 왼쪽 눈 위로 말아올려 고정했는데, 아마 그림을 그릴 때 방해되지 않도록 한 듯합니다. 꼬리 끝은 오른쪽 관자놀이 위로 화려하게 치솟아 있습니다. 주름 속 어두운 그림자와 접힌 천이 빛을 받는 밝은 하이라이트의 강한 대비는 얀 반 에이크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액자도 함께 감상해보세요.
액자에는 모델이나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지 않아요. 이는 반 에이크의 초상화에서 흔한 방식이라고 합니다.
액자 상단에는 화가의 좌우명 “Als Ich Can”이 큰 그리스 문자로 적혀있습니다. 이 문구는 플랑드르어 속담을 축약한 것이자, 작가 이름(Eyck)과의 언어 유희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ich=Eyck),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은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이 좌우명은 브뤼허 그로닝언 미술관에 있는 그의 아내 마르가레타 초상 등 여러 작품에서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Als Ich Can
한국사람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 문장을 한번 파헤쳐 볼까요?
이 문구는 원래 중세 플랑드르어(중세 네덜란드어) 속담에서 온 표현입니다. ‘Als Ich Can’은 ‘As I can, but not as I would =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라는 뜻입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의미의 겸손한 말인거죠.
하지만 여기서 한가지 더 작가가 숨겨놓은 의미를 알아야하는데, I(나)를 의미하는 Ich는 발음은 작가 이름인 Eyck와 같았어요. 즉 ‘As Eyck can’인 거죠. “내가 할 수 있을만큼”이면서 동시에 “에이크가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생기는 것입니다. 발음이 같음을 활용한 말장난(pun)이면서, 자기 기량에 대한 강한 자신감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표식처럼 쓰인 이 문구는 제작자의 표식이자 퀄리티 보증과 같은 기능을 했어요. 굳이 서명을 그리스 문자로 쓴 것은, 아는 사람만 읽는 코드(암호) 같은 멋을 추구하면서, 나는 그냥 화가가 아니라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한 지식인이라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을 수도 있어요.
원래의 금박 액자는 1950년대에 세척되었으며, 옆면은 패널과 같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액자 위, 아래 부분은 별도로 만들어 둥근 못으로 고정했는데, 특히 “Ich”라는 글자 부분에서 못 자국을 볼 수 있어요. 얀 반 에이크의 다른 작품들에도 같은 액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목수가 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액자에는 적혀있는 좌우명, 서명, 날짜는 조각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린 것입니다. 당연히 조각된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그린 것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더랬죠.
액자 하단에는 라틴어 약어 “JOH[ANN]ES DE EYCK ME FECIT AN[N]O M° CCCC° 33° 21 OCTOBRIS”가 그려져있어요. 이이는 “얀 반 에이크가 1433년 10월 21일에 나를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훌륭한 화가이지만,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래 서명을 위한 가이드 라인이 비뚤어져 다시 그려진 흔적이 있고, OCTOBRIS라는 단어는 공간이 부족해서 마지막에 빽빽하게 들어가있는 것을 보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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